이한열 열사 및 1987 영화에 대한 내용을 알아보겠습니다. 이 문서를 전체적으로 읽고 나면 이한열 열사 및 1987 영화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한열 열사 및 1987 영화가 궁금하신 분들은 모두 읽어주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삼일전인 2022년 1월 9일 이한열 열사의 모친이신 배은심 여사께서 향년 82세를 마감으로 별세하셨습니다. 그녀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한 차례 시술을 받았으며, 건강을 회복하신 듯 상태가 좋았으나 결국 쓰러지신 후 병세가 악화되어 소천하셨습니다. 이한열 열사의 모친께서 별세함으로써 다시금 이한열 열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이슈가 된 시점입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빈소를 찾은 배우 강동원은 올해 뵙기로 했는 데 못 봬서 죄송하다며 조문을 해서 주위를 안타갑게 했다고 합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1987에서 이한열 열사역으로 출연한 강동원은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 열사의 모친인 배은심 여사의 빈소를 찾아 애도를 표현했습니다. 소식 듣고 놀라서 바로 내려왔으며, 올 해는 통화만 해서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조문을 마친 강동원은 다른 조문객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등 약 20분간 빈소에 머물다가 자리를 떴으며, 호상을 맡은 우상호 의원과 빈소에 머물고 있던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한자리에 앉아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이한열 열사
위 사진은 1987년 6월 9일 대낮에 서울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최루탄에 피격 당하여 쓰러진 모습 장면사진.
당시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기자였던 네이선 벤이 연세대 정문 앞 굴다리 위에서 이 모습을 포착했습니다. 당시 이한열 열사는 경영학과 2학년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21살의 꽃다운 나이에 어이없게 돌아가신 이한열 열사에게 다시 한 번 추모의 마음을 올립니다. 이한열 열사는 전남 화순에서 아버지 이병섭님과 어머님 배은심님 사이에서 출생하여, 1986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진학을 했습니다.
당시는 한국사회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전두환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한 참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며, 곧 1988 서울올림픽도 개최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위 사건 전에 발생한 서울대학교 학생 사망사건. 즉,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심문을 받다가 물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조사과정 경찰은 탁하고 책상을 쳤더니 억하고 쓰러져 숨졌다고 하는 어이 없는 발표를 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전국에서 고문치사사건을 은폐하려고 군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다발적으로 벌어졌고, 6월 10일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가 개최가 되었는데 그 전날 발생하게 된 사건입니다. 6월 9일 정문을 나서는 학생들을 상대로 전투경찰은 최루탄을 그대로 발사함으로써 이한열 열사의 뒷머리에 그대로 맞게 되어 두개골 골절상으로 쓰러지게 되고 7월 5일 뇌손상이 회복되지 않아 21세 나이로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7월 9일 민주국민장으로 장례식이 거행되었으며, 광주광역시 망월동 518 묘역에 매장되었습니다.
역사 흐름을 정리 하자면...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1987.1)
▶전두환 4.13 호헌 조치(직선제 개헌 요구 거부)
▶6.10 항쟁 하루 전 개헌 요구 시위 중 이한열 열사 최루탄 맞고 의식불명(6.9)
▶6.10 항쟁. 시위 전국적으로 확대
▶6.29 민주화 선언
1987년에 있었던 6월 민주 항쟁은 6월 10일부터 29일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다.
1987 영화
1987 영화는 사실을 기반으로 전개가 됩니다.
전두환은 군사독재를 통해 권력을 지키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고문했고, 그 과정에서 대학생 박종철 열사가 사망했습니다. 그는 수문에 맞아 죽었지만, 그것을 숨기기에 바빴습니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을 은폐하려는 군부 경찰 등 권력에 맞서 진실을 밝히는 사람들의 승리를 시원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6월 항쟁의 씨앗은 박종철 열사 고문으로 전두환은 4월 13일 직선제를 거부했고, 이한열 열사는 6월 10일 항쟁 하루 전인 6월 9일 연세대 앞에서 최루탄을 맞아 광화문 광장으로 더 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헌법 폐지, 독재 정권 전복, 민주 헌법을 쟁취하자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결국 6월 29일 민주화 선언이 나왔고, 그해 10월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로 헌법이 개정됐습니다.
강동원 배우는 영화 1987에서 이한열 열사 역으로 출연한 이후 이한열기념사업회에 익명으로 2억원을 특별 후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캐스팅 전에 이한열 열사 역할에 대한 논란도 많았으나 잘 극복하고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강동원 배우 덕분에 영화 1987은 더 빛을 본 것 같습니다. 아직 안 보신 분은 영화 1987 추천드립니다.
한눈에 보기
- 1987년 1월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로 전국적인 반 군부시위가 전국적으로 영향을 미침
- 1987년 6월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이한열 열사 쓰러짐
- 1987년 6월 29일 민주화 선언, 호헌철폐
이한열 열사 및 1987 영화를 알아보았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른 것도 궁금하시다면 위의 글들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게시글이 유익했다면 하트(공감), 댓글, 구독을 부탁드립니다.